그 시절의 당구장

Photo 2006/03/20 12:18

학교는 둘러싼 야산의 중턱에 놓여있었다. 앞쪽으론 이제막 개발이 시작되는 서울 변두리도시의 분위기를 상징하듯 큼지막한 아파트 단지가 시선을 가로막으며 올라서고 있었고 그 한쪽켠으로 겨우 숨이트일만큼 열린 원경이 내다보이는 곳이었다.
그들 무리는 학교 뒷산의 중턱을 가로지르는 샛길을 따라서 집에 돌아가곤 했다. 아니, 정확히는 '집에 돌아가는 것'이 아닌 '학교가 끝나는 것'이다. 학교는 그저 하루의 시간 중 그들이 치러야 할 어쩔 수 없는 의무에 지나지 않았고 마음을 다해 원하는 시간은 언제나 방과 후였으므로 산을 넘는 행위는 '집에 돌아가는 것'이 아닌 지겨운 시간에서 벗어난 '본격적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야산의 고개를 돌아서면서 무성한 나무 사이로 채 학교 건물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담배를 꺼내 문다. 하룻동안 언제있을지 모를 검문과 감시로부터 나름의 노하우를 총동원해 꽁꽁 숨겨두었던 전리품이었다. 무리는 금방 증기기관차같은 연기를 머리위로 뿜으며 걷고있었다. 그리곤 그날의 영웅담이 펼쳐진다. 하룻동안 어떻게 그 답답한 장소에서 버텨왔는지에 대한 욕설섞인 - 욕설 만큼이나 과장이 섞인 이야기들 이었다.
산을 경계로 학교와는 완전히 등을 맞대고 서있는 곳에 그들의 단골 당구장이 있었다. 1993년 5월 13일의 위헌 판결이 있기 전까지 당구장은 '청소년 출입금지'장소 였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금지>는 더욱 당구장을 찾도록 하는 매력쯤으로나 여겨졌을 뿐이다.
이제막 큐걸이에 익숙해진 나는 구석에 놓인 쇼파 - 이승만 시대부터 그자리에 붙박혀있었을 듯한, 색바래고 부분부분이 찢겨 청색테잎이 붙어있으며 엉덩이 부분이 심하게 파인 - 에 앉아서 해가 지고 화실에 갈 시간이 될 때까지 담배나 피워물고 있었다. [씨티 헌터]를 넘겨 보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패싸움에 '쪽수 맞추기' 정도나 하면 되는 그런 시간이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 무리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때의 녀석들도 그런것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제 막 시골에서 올라온 어리버리한 나를 살갑게 대해주는 녀석들이라곤 그놈들 뿐이었다. 덕분인지 졸업식에서 되짚어 볼 수있는 이름이라곤 채 열다섯이 넘지를 않았지만 그리 후회스런 생활은 아니었다.


그 중 한 녀석이 싸이판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라는 얘기를 그 무리들의 마지막 소식으로 들었었다.

다들 지금은 애 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우려와는 다르게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고들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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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oopsmax 2006/03/20 14:58 수정/삭제/ 댓글

    간만에 일등. (배경 사진, 초상권 사용 허가는 받으신 건지 궁금; 소녀가 예뻐요. ^ ^)
    당구에 버닝 중이신 듯해서 시작한 지 얼마 안되셨겠거니 했는데 세상에, 줄잡아 15년은 치셨나 보네요.
    프로로 입문하셔요! (담배와는 이별 추천)

  2. BlogIcon akgun 2006/03/20 15:24 수정/삭제/ 댓글

    등수놀이는 무경고 삭제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엄중히 경거망동은 버닝~ 이라면서 목을 댕강 자르던 영화가 있었던 당구장은 줄 안 잡아도 17년은 출입했겠습니다만, 대부분의 제 나이 또래의 사내라면 그정도는 됩니다. 년수는 무의미한 것이지요.(연에대한 제 사랑을 막지는 못하십니다)

  3. BlogIcon bellbug 2006/03/20 16:23 수정/삭제/ 댓글

    그니까 초등학교때 담배를 물고 당구장엘 갔다는 거여? 그런데 구력이...고작 200이야?

  4. BlogIcon akgun 2006/03/20 17:59 수정/삭제/ 댓글

    놀라긴, 같은 재단의 여상 누나들이랑 미팅도;;
    bellbug님이 신문사 다닌다고 신문지 배 잘 만드는 거 아니잖아요~

  5. zapzap 2006/03/20 18:14 수정/삭제/ 댓글

    안 평범하거덩!?!!

  6. BlogIcon akgun 2006/03/20 18:21 수정/삭제/ 댓글

    이보다 더 디폴트한 외모가 또 있단 말인가? 후우~

  7. BlogIcon bellbug 2006/03/20 18:43 수정/삭제/ 댓글

    조각하기전 사각대리석처럼 디폴트해.

  8. BlogIcon akgun 2006/03/20 22:03 수정/삭제/ 댓글

    다비드상도 처음에는 한 덩어리의 돌덩어리에 불과했지.
    (미켈란젤로같은 성형의를 소개좀..-.,-;;)

  9. BlogIcon 대마왕 2006/03/21 13:47 수정/삭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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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폴트하지 않거든요 0ㅂ0..

  10. BlogIcon akgun 2006/03/21 15:40 수정/삭제/ 댓글

    날 저 좁은 박스에 몰아 넣은 저의가 뭐냐?!
    오늘부로 널 불순물로 분리하기로 맘 먹었다.

  11. 2006/03/22 07:38 수정/삭제/ 댓글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2. BlogIcon 미루키 2006/03/22 11:00 수정/삭제/ 댓글

    당구 한번도 안쳐봤어요. 물론 포켓볼도..
    배워볼까 하는 호기심은 있는데 시작이 반이라고.. 어렵죠 ^^

  13. BlogIcon akgun 2006/03/22 11:51 수정/삭제/ 댓글

    비밀댓글// 죄송킨요. 좋은 하루 보내시길...

    미루키// 그리 어려운 종목은 아닙니다. 기본만 살짝 익히시면 됩니다.
    특히 당구치는 여성은 인기가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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